Page 66 - 선림고경총서 - 23 - 인천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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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인천보감


                  자소(子韶)는 격물(格物)이요
                  묘희(妙喜)는 물격(物格)이니
                  한 관(貫)이 얼마나 되는고
                  오백 돈이 둘이로구나.

                  子韶格物 妙喜物格
                  欲識一貫 兩箇五百


               공은 이로부터 도를 참구하여 법을 깨달아 자유로웠고,마음이

            텅 비고 의혹이 없어졌다.언젠가는 이렇게 감탄하였다.
               “경산 노스님이 들려주신 이야기는 사방팔방으로 활짝 트여서

            마치 천문만호를 한번 밟아보지 않고도 활짝 열어제치는 듯하다.
            어떤 때는 가마를 나란히 타고 높은 산에 올라가기도 하고,어떤
            때는 깊은 연못가를 천천히 걷기도 하는데,보통 사람들과 다를

            바 없으나 아무도 우리 두 사람의 경계[落處]를 알지 못한다.
               이 장구성이 생사 문제[末後大事]를 깨닫게 된 것은 실로 경산
            스님의 가르침에서 나온 것이니,이 한 줌의 향(香)은 스님을 감히

            등질 수 없기 때문에 피우는 것이다.”
               공이 남안(南安)에서 유배생활을 보낸 14년 동안,불교 경전과
            유가 서적들을 공부하면서 지나가는 납자(衲子)가 있으면 반드시

            경계를 확인해 보고 선열(禪悅)의 즐거움을 맛보았으나,한번도 득
            실을 마음에 두지 않았다.그리하여 아는 사람은 모두 그의 도풍

            과 현달함을 높이 평가하고 마음 깊이 존경하였다.
               공은 언젠가 중승(中丞)하백수(何伯壽)에게 다음과 같은 답서
            를 보낸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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