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2 - 선림고경총서 - 23 - 인천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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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인천보감


               그러자 그는 법당에 내려와 죽었다.
               당시 홍주(洪州)의 종씨(鍾氏)가 여러 차례 청하였으나 가지 않

            고 단지 대매 법상(大梅法常)선사의 산거시(山居詩)한 수로 답을
            보냈다.
               천복 신유(天復辛酉:901)년 6월 여름밤에 소임자에게 오늘이

            며칠이냐고 물어 그가 유월 보름이라고 대답하자 스님은 이렇게
            말하였다.
               “평생 행각에서 반드시 90일로 한 철을 났으니 내일 진시(辰時)

            에 행각길에 나서련다.”

               그러고는 때가 되자 향을 사르고 입적하였다. 승보전(僧寶傳)



               30.독설로 불사를 짓다/법운 법수(法雲法秀)선사



               법운사(法雲寺)법수(法秀:1027~1090)선사는 진주(秦州)사람
            인데 전생에 노화상(魯和尙)과 아주 가까운 사이였다.하루는 노화

            상에게,자신이 죽거든 대밭 언덕 아랫집으로 찾아오라고 하였다.
            그 집에 아기가 태어나자 노화상이 찾아가서 보았더니 아이가 한
            번 웃음을 지어 보였으며,세 살 때 노화상을 따라가겠다고 하여

            출가하였다.태어날 때부터 인물이 남달랐고 온 대중 가운데 있으
            면 그려 놓은 듯 우뚝하고 훤칠하였다.

               스님은 늘 독설[怒罵]로 불사를 지었다.당시 사마온공(司馬溫
            公:光)이 등용되었는데,불법이 너무 성한다 하여 이를 억제하려


              山五位)중 ‘겸지(兼至)’‘겸도(兼到)’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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