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6 - 선림고경총서 - 23 - 인천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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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다.
그 후 서촉(西蜀)으로 돌아가 도수(涂水)가에서 강을 건너는
사람들을 기다렸다가 그들 모두에게 차를 끓여 주곤 하면서 3년
을 지냈다.그러다가 우연히 뒷산에 올라가 옛 절 하나를 발견했
는데 이름이 대수사(大隋寺)였다.그 산에는 둘레가 네 길[丈]되
는 큰 나무 한 그루가 있었고 남쪽으로 문이 하나 나 있어 도끼나
칼을 빌리지 않고도 그대로가 암자였다.선사가 마침내 이곳에 살
게 되니 세상 사람들은 그곳을 글자 그대로 ‘목선암(木禪庵)’이라
고 불렀다.
혼자 그곳에 살기 십여 년에 명성이 멀리까지 퍼져서 촉왕(蜀
王)이 세 번이나 불렀으나 들어주지 않으니,왕은 선사의 고고한
도풍을 우러러볼 뿐 한번 만나 볼 길이 없었다.내시를 보내 스님
에게 호와 사액(寺額)을 하사하였지만 받지 않았고 무려 세 번을
보냈으나 확고부동하게 거절하였다.촉왕은 다시 사람을 보내면서
칙명을 내려 이번에도 전처럼 받지 않는다면 그대를 죽이겠다고
하였다.그가 다시 찾아가 간절히 절하면서 “스님께서 받지 않으
시면 제가 죽습니다”라고 하니 선사는 그제서야 받았다.
선사가 대중에게 설법하였다.
“나는 명리를 위해서 여기 온 것이 아니다.다만 사람을 얻고
자 할 뿐이다.백운청산 속에서 시비를 쫓지 말지니 업보로 받은
이 몸을 벗어버리면 풀 한 포기도 먹지 못할 것이다.선승들이여,
내가 행각할 때에 여러 총림에 가 보면 많게는 천 명,적어도 2백
명의 대중이 있었다.그곳에서 동안거,하안거를 보냈으나 깨닫지
못하고 공연히 시간만 보내다가,위산스님 회중에 가서 7년 동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