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8 - 선림고경총서 - 23 - 인천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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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인천보감


            다.제가 처음 와관사에 왔을 때 40명이 함께 좌선하여 20명이 법
            을 얻었고,다음 해에는 백여 명이 좌선하여 20명이 법을 얻었으

            며,그 다음 해는 2백 명이 좌선하여 10명이 법을 얻었습니다.그
            후 대중은 점점 많아졌으나 법을 얻는 사람은 점점 적어졌고 도
            리어 제 수행에 방해만 되니 제 수행력을 알 만합니다.천태산에

            관한 기록에 보면 선궁(仙宮)이라는 곳이 있다고 들었는데 이제
            그 산에서 인연을 쉬며 봉우리를 쪼아먹고 개울물을 마시면서 평
            생의 원을 펼쳐 볼까 합니다.”

               진(陳)나라 태건(太建)7년(575)가을,천태산에 들어가니 노승
            한 분이 길을 인도하며 말하였다.
               “스님께서 절을 지으려 하신다면 산밑에 터가 있으니 그것을

            기꺼이 스님께 드리겠습니다.”
               “ 지금 같은 시절에는 초막도 꾸미기 어려운데 하물며 절을 짓

            겠는가?”
               “ 지금은 때가 아니나 삼국이 통일되면 세력 있는 사람이 여기
            에 절을 세울 것입니다.절이 다 지어지면 나라도 맑아질 것이니

            절 이름을 국청사(國淸寺)라 불러야 할 것입니다.”
               그때 천태산에는 정광(定光)선사란 분이 있었는데 보통사람이

            아니었다.산에 산 지 30여 년에 자신을 감추고 도를 밝혀,그와
            어울리기는 쉬웠으나 그를 알아보기는 힘들었다.그러나 그가 예
            언한 일은 대부분 들어맞았다.지자선사는 그날 저녁 정광선사의

            초막에서 묵게 되었는데 정광선사가 말하기를,“예전에 손짓하며
            부르던 일이 기억나느냐?”하기에 그가 사는 곳을 보니 영락없이
            전에 꿈에서 본 산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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