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8 - 선림고경총서 - 24 - 나호야록
P. 108

108


                 원래 그대로라,더 참구할 것이 없네

                 항시 몸에 지니는 건 키를 넘는 지팡이 하나
                 배 채우는 일은 다리 부러진 솥에 의지하고
                 어느 곳이 한가로이 보내기 좋을까 이리저리 찾아보며
                 물소리며 산 빛 속을 두루두루 다녔네

                 이글거리던 화롯불에 맑은 연기 자욱하고
                 쇠종 두드릴 때 새벽운치 차갑다
                 한 가닥 염주는 투박하고 무거우나
                 백팔 개를 들어 보니 거짓이 아니었구나

                 안자의 청빈도 낙이라 할 수 없고
                 구슬을 보존해 온 인상여*도 지조 높다 할 수 없네
                                        1 6)
                 어찌 산 생활에 비하리오

                 처마 끝 솔바람은 가을파도 소리를 내는구나

                 굵게 씌어진 몇 줄의 경 구절
                 한 가락 거친 향은 해묵은 잣나무 뿌리
                 조용한 석실에 봄햇살 깃든 지 오래인데
                 꽃잎새 떨어지는 마을에 소쩍새 우는구나

                 어부가와 감로곡,그리고
                 한산이 읊었다는 법등의 시를


            *인상여(藺相如):조(趙)나라에 중국 최고의 보물구슬이 있었다.조나라보다 강한
              진나라의 소왕(昭王)은 구슬을 욕심 내어 자기 나라의 성 15개와 그 구슬을 바꾸
              자고 제안했다.그 제안이 결코 지켜지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조나라의
              혜문왕(惠文王)은 크게 당황했다.그때 낮은 지위의 인상여(藺相如)가 자진해서
              그 약속을 이행시키고 오겠다며 진나라 사신으로 떠났다.그러나 소왕이 약속을
              어기자 인상여가 목숨을 걸고 약속시킬 것을 요구하자 소왕이 결국 굴복하고 15
              개 성과 구슬을 바꾸었다는 얘기다.
   103   104   105   106   107   108   109   110   111   112   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