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8 - 선림고경총서 - 24 - 나호야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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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그대로라,더 참구할 것이 없네
항시 몸에 지니는 건 키를 넘는 지팡이 하나
배 채우는 일은 다리 부러진 솥에 의지하고
어느 곳이 한가로이 보내기 좋을까 이리저리 찾아보며
물소리며 산 빛 속을 두루두루 다녔네
이글거리던 화롯불에 맑은 연기 자욱하고
쇠종 두드릴 때 새벽운치 차갑다
한 가닥 염주는 투박하고 무거우나
백팔 개를 들어 보니 거짓이 아니었구나
안자의 청빈도 낙이라 할 수 없고
구슬을 보존해 온 인상여*도 지조 높다 할 수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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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산 생활에 비하리오
처마 끝 솔바람은 가을파도 소리를 내는구나
굵게 씌어진 몇 줄의 경 구절
한 가락 거친 향은 해묵은 잣나무 뿌리
조용한 석실에 봄햇살 깃든 지 오래인데
꽃잎새 떨어지는 마을에 소쩍새 우는구나
어부가와 감로곡,그리고
한산이 읊었다는 법등의 시를
*인상여(藺相如):조(趙)나라에 중국 최고의 보물구슬이 있었다.조나라보다 강한
진나라의 소왕(昭王)은 구슬을 욕심 내어 자기 나라의 성 15개와 그 구슬을 바꾸
자고 제안했다.그 제안이 결코 지켜지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조나라의
혜문왕(惠文王)은 크게 당황했다.그때 낮은 지위의 인상여(藺相如)가 자진해서
그 약속을 이행시키고 오겠다며 진나라 사신으로 떠났다.그러나 소왕이 약속을
어기자 인상여가 목숨을 걸고 약속시킬 것을 요구하자 소왕이 결국 굴복하고 15
개 성과 구슬을 바꾸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