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1 - 선림고경총서 - 24 - 나호야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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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호야록 上 111
그를 만나려고 하였으나 허함이 예의를 갖추지 않자 명함을 다시
품에 넣고 돌아온 적이 있었다.그 후 끝까지 관직에 나아가지 않
고 황룡 혜남선사에게 도를 물어 인가를 받았다.
그는 늘상,맑은 시대에 사는 편안한 백성[淸世之逸民]이라고
하면서 스스로를 ‘청일거사(淸逸居士)’라 불렀다.가우(嘉祐:1056
~1063)연간 후 조정의 높은 관리가 수십 차례나 그를 천거하여
마침내 균주(筠州)군사추관(軍事推官)으로 기용되었다.그러나 이
를 마다하고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으며 예장(豫章)동호(東湖)위
에 은거하면서 거문고와 책을 벗삼아 즐겁게 지냈다.그러던 어느
날,혜남선사의 제자 잠암 원(潛庵淸源)선사가 그를 방문하였다가
거문고를 켜고 있는 모습을 보고 말하였다.
“노인께서는 아직도 거문고 줄을 더듬고 계십니까?”
“ 켜야 소리가 울리니까.”
“ 작은 일이 아니지요.”
“ 내 마음을 알아줄 이 몇이나 되겠소.”
적음(寂音)선사가 그의 영정에 글을 썼다.
비로(毘盧)에는 남[生]없는 창고요
진단에는 도(道)있는 그릇이라
오묘한 뜻을 말할 때면 온몸으로 혀를 삼고
대천세계를 떠받칠 때면 손으로 땅을 삼는다
기봉이 방거사에 뒤지지 않으면서도 문자선(文字禪)을 알았고
처신은 유학자를 닮았지만 세상 밝히기를 그만두었으니
서왕의 강요로도 그를 어쩔 수 없었고
벼슬을 내려 주었지만 나아가지 않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