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01 - 선림고경총서 - 24 - 나호야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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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호야록 下 201
방장실 벽 위에 글을 썼다.
“나는 사흘 만에 화엄경해 를 써냈으니 불법에 큰 인연이 있
는 자이다.뒷날 이곳이 각성(覺城)*의 동쪽으로 비유될 것이니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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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 부처 눈[佛眼]을 가진 자만이 이 일을 알 수 있다.”
이에 수선사는 이 글의 잘못을 지적하였다.
“그대는 어찌하여 그처럼 쉽게 말하는가.화엄경이란 원돈상승
(圓頓上乘)의 경계로서 현량(現量)으로 증득하는 것이다.그런데
지금 ‘각성의 동쪽’에 비유한 것은 비량(比量)이니,결코 원돈종(圓
頓宗)이랄 수 없다.또한 ‘뒷날’이라 말하였는데 하나인 참 법계에
는 예와 지금이 없다.그러므로 ‘십세 고금이 시종 지금 생각을
떠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이다.그런데 만일 ‘뒷날’이라 한다면
‘오늘’이라는 말도 틀리다고는 못 할 것이다.그리고 그대가 ‘오직
부처의 안목을 가진 자만이 안다’고 하였는데,화엄경에는 ‘평등
한 참 법계에는 부처도 없고 중생도 없어,범인이니 성인이니 하
는 생각이 다 없어지고 나라든가 남이라든가 하는 생각이 모두
없어졌다’하였으니 어떻게 어리석고 지혜로운 차별이 있겠는가.
굳이 ‘부처의 안목[佛眼]’만을 요한다면 천안(天眼)과 인안(人眼)인
들 어찌 모르겠는가.”
그는 이에 뉘우치고 사과하였으며 뒤에 수선사가 입적하자 제
문을 올렸다.
“방외(方外)의 벗으로는 오직 스님과 저뿐이었습니다.지난날
만났을 때를 돌이켜보니 한마디에 기연이 투합하였고,스님께서
*각성(覺城):마갈타국 가야성.석존이 깨달은 장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