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2 - 선림고경총서 - 24 - 나호야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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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러가고 시원함이 찾아드는 계절이라 절은 가을향기로 가득하였
다.회당스님이 그에게 말하였다.
“물푸레나무 꽃향기가 납니까?”
“ 납니다.”
“ 나는 그대에게 숨긴 것이 없습니다.”
황공은 그제서야 흔쾌히 이해하였다.
그가 검남(黔南)에 있을 때 사심스님에게 서신을 보냈다.
“지난날 선사께서 입이 아프도록 깨우쳐 주셨으나 항상 꿈속
에 취한 듯 어렴풋이 빛그림자 속에 있는 듯합니다.이것은 아마
도 의심하는 마음이 말끔히 사라지지 않았고 미세한 번뇌를 끊
지 못하여,벼랑을 바라보고 지레 물러서기 때문이라 생각합니
다.본인이 검주(黔州)로 부임하는 도중에 낮잠을 자다가 깬 후
갑자기 마음이 훤히 열리는 듯하였습니다.이에,지나온 일을 생
각해 보니 천하 스님들에게 많이 속아 왔는데 오직 사심스님만
은 그렇지 않아서 마침내 가장 위해 주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영원스님이 게송을 지어 그에게 보냈다.
예전엔 얼굴을 마주하고도 천리나 멀리 느꼈는데
이젠 만리 밖에 있어도 더욱 가깝다
고요한 그 맛은 죽처럼 담담하고
쾌활스런 대화 속에 주객이 계합한다
집안에서 누구에게 천녀(天女)를 참배토록 허락하겠는가
눈 속에서 눈동자를 찾으려 하지 마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