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6 - 선림고경총서 - 24 - 나호야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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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무(無)라 하였습니다.없다고 하지만 애초에는 사실상 있었으
며,있다고 하지만 이제는 사실상 없어졌습니다.결국 유도 아니
고 무도 아니니 이것으로 대승종교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내가
할을 했을 때 ‘있다[有]’고 말한 것은 그저 ‘유’가 아니라 ‘무’로
인한 ‘유’이며,할 소리가 사라졌을 때 ‘없다[無]’고 한 것은 그냥
‘무’가 아니라 ‘유’로 인한 ‘무’입니다.이것이 곧 ‘유’이자 ‘무’이
니 이로써 돈교(頓敎)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나의 이 할은 할로서
의 작용에만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유․무로는 미치지 못하고,
생각과 이해를 모두 잊은 것입니다.‘유’라고 할 때도 실오라기 하
나 설 수 없고 ‘무’라고 할 때도 허공에 가득하니,이 하나의 할에
백천만억의 할이 들어가고 백천만억의 할이 하나의 할에 들어갑
니다.이것으로 원교(圓敎)로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마침내 선법사는 머리를 조아리고 사죄하였다.스님은 또다시
선법사를 불러 말하였다.
“어묵동정 하나하나와 예로부터 오늘날까지의 시방 허공과 삼
라만상,육취사생과 삼세제불,일체성현,그리고 팔만 사천의 법문
과 백천삼매와 무량묘의에 이르기까지 그 이치와 기연을 깨달아
천지 만물과 한몸인 것을 ‘법신(法身)’이라 합니다.또한 삼계유심
(三界唯心)과 만법유식(萬法唯識)을 깨달아 사시팔절(四時八節)의
음양과 일치됨을 ‘법성(法性)’이라 합니다.그러므로 화엄경도 ‘법
성이란 모든 곳에 두루하여 유상(有相)과 무상(無相),소리 하나 물
건 하나까지도 모두 한 티끌 속에서 네 가지 뜻을 포함하고 있다.
사(事)와 이(理)는 끝이 없어 남김없이 두루하니 어우러졌으나 뒤
섞이지 않고 섞여 있으나 하나가 아니다’라고 하였으니,여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