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6 - 선림고경총서 - 24 - 나호야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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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대장경에 편입된 명교스님의 저술들
명교 숭(明敎契嵩:운문종)선사는 명도(明道:1032~1033)연간
에 예장(豫章)서산(西山)의 구양방(歐陽昉)에게서 그의 집에 소장
되어 있는 책을 빌려 왔다.봉성원(奉聖院)에서 그 책을 보다가 드
디어 불교의 오계(五戒)와 십선(十善)이 유교의 오상(五常)과 통한
다는 사실을 알고 원교론(原敎論) 을 지었다.
당시 구양 문충공(歐陽文忠公:脩)은 당(唐)의 한창려(韓昌黎:
韓愈)를 흠모하여 불교를 배척하였고,우강(盱江)의 이태백(李泰伯)
도 그러한 부류였다.숭선사는 그의 저서를 가지고서 세 차례나
이태백을 방문하여 유가와 불가의 일치점을 논하고 그의 학설을
반박하였다.이태백은 스님의 격조 높은 문장을 좋아하고 훌륭한
논리에 승복되어 문충공에게 서신을 보내 숭선사를 추천하였다.
얼마 후 스님은 항주(杭州)영은사(靈隱寺)에 머무르면서 정종기
(正宗記)와 정조도(定祖圖)를 저술하여 서울로 올라갔다.가던
도중 개봉부(開封府)를 지나는 길에 부윤(府尹)왕소(王素:仲儀)에
게 편지를 보내자 왕소는 황제에게 문서[箚子]를 올렸다.
“저는 지금 항주 영은사의 승려 설숭이 저를 통하여 올리려는
글을 갖고 있습니다.그의 말에 의하면 선문에서 법을 전해 온
조사스님들의 계통이 분명하지 못하여,얄팍한 지식을 가진 교학
자들이 제각기 전법에 대한 기록을 고집하여 고금에 잦은 시비
를 불러일으켰다고 합니다.그리하여 대장경을 찾아 따져 보고
선문 조사들의 내력을 빠짐없이 적었습니다.그 중 번거로운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