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8 - 선림고경총서 - 24 - 나호야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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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금 세상에 나와 예장(豫章)관음사(觀音寺)에 주지를 맡아 달
라고 청하였다.그의 명이 너무나 준엄한 까닭에 영원선사는 마지
못해 나아갔지만 게송을 보내 물러날 뜻을 보였다.
땅도 없고 바늘도 없는 뼈에 사무치는 가난에서* 9)
중생을 제도할 보배 없는 것이 더욱 부끄러울 뿐이오
저자 한복판에서 문을 열기에는 어려운 몸이니
병든 몸 보살피며 청산에 살게 해주소서.
無地無鍼徹骨貧 利生深媿乏餘珍
廛中大施門難啓 乞與靑山養病身
당시 태사(太史)황노직(黃魯直)은 초상을 당하여 고향에 있으
면서 손수 흥화사(興化寺)해노(海老)선사에게 서신을 보냈다.
“관음사의 주지 자리가 비어 있어 상사(上司)께서 유청스님에
게 마음을 두고 있는데,유청스님이 결코 가지 않으려 한다는 말
을 들었습니다.그것도 퍽이나 좋은 일이지만 3천 년 만에 한 번
열리는 반도(蹯桃:하늘에서 열리는 복숭아)를 퇴색한 살구로 따
게 하지 마십시오.이는 황룡사와 흥화사가 불법 돕는 인연을 마
련하여 다 함께 힘을 합쳐야 할 일이지,나무 위에 사람을 올려
놓고 사다리를 치워 버려서는 안 될 것입니다.”
*향엄스님이 대나무에 기와조각 부딪치는 소리를 듣고 깨닫자 위산스님이 인정을
하였다.그러자 앙산스님이 향엄스님을 간파하러 가서 정말 깨쳤다면 달리 말해
보라고 하니 향엄스님이 다음과 같은 시를 지어 보였다.
지난 해 가난은 가난이 아니었고/금년의 가난이 진짜 가난이네/작년 가난은 바
늘 꽂을 땅이라도 있더니/금년 가난은 바늘마저 없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