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4 - 선림고경총서 - 24 - 나호야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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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사를 찾아가 밤늦도록 이야기하다가 종문의 일에 대하여 스님
            에게 말하였다.

               “요사이 전등록을 보니 천칠백여 명 큰스님들 기연에서 오직
            ‘덕산(德山)선사의 탁발화두’*에만 의심이 납니다.”
                                      12)
               “ 탁발화두가 의심난다면 그 나머지도 알음알이로 따지고 해석

            한 것입니다.그렇게 해서야 어떻게 큰 안락의 경지에 이르겠습니
            까?”
               그는 분한 마음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계속 자리에서 일어났다

            앉았다 하였다.새벽녘에 자기도 모르게 요강을 걷어차 엎어 버렸
            는데 그 순간 크게 느낀 바 있었다.몹시 기뻐서 그 길로 종열선
            사의 방장실 문을 두드리며 “도적을 잡았습니다!”하고 소리쳤다.

            스님께서 도둑질한 물건은 어디 있느냐고 되묻자 그가 뭐라고 말
            하려는 차에 스님께서 “그대는 잠이나 자시오”하였다.

               이튿날 아침 그는 송을 지었다.


                 북소리 범종소리 적막한데 탁발길에서 돌아오니
                 암두스님의 한마디 꾸중은 벽력과 같네
                 과연 3년밖에 못 살았으니


            *덕산스님이 하루는 밥 때를 놓치고 손수 발우를 들고 법당에 올라갔더니 설봉스
              님이 보고는 말하였다.“종도 치지 않았고 북도 울리지 않았는데 저 노장이 발우
              를 들고 어디로 가는가?”그러자 덕산스님은 그냥 돌아갔다.설봉스님이 이 일을
              암두스님에게 말했더니 암두스님이 “가엾은 덕산이 말후구(末後句)를 몰랐도다”
              하였다.덕산스님이 전해 듣고 암두스님을 불러 “그대는 노승을 긍정치 않는가?”
              하고 물으니 암두스님이 자기 견해를 진술했다.이튿날 덕산스님이 법당에 올랐
              는데 평상시와 달랐다.암두스님은 큰방 앞에서 손뼉을 치면서 “저 노장이 기쁘
              게도 말후구를 알아차렸다.앞으로는 아무도 그를 어쩌지 못하리라.그러나 겨우
              3년뿐이로다”하였다(덕산스님은 과연 3년 후에 입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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