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5 - 선림고경총서 - 24 - 나호야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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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호야록 上 75
그의 수기 때문에 당한 것이 아닌가.
鼓寂鐘沈托鉢回 巖頭一拶語如雷
果然只得三年活 莫是遭他受記來
헤어진 지 얼마 후 종열선사는 입적하고 무진거사는 재상이 되
었다.그 이듬해 선화(宣和)신축년(1121)2월,황제에게 스님의 시
호를 청하고 윤허를 얻은 후 사신에게 제문을 보내 부도 앞에서
재를 올렸다.제문은 다음과 같다.
“예전에 앙산(仰山)선사가 임제선사에게 ‘그대의 도가 뒷날 오
월(吳越)지방에서 성행하겠지만 바람[風]을 만나면 멈추게 될 것
이다’라고 하였는데,그 후 4대를 내려와 풍혈 연소(風穴延沼)선
사에 이르렀다.연소선사는 그 예언이 항상 마음에 걸렸는데,늦
게사 제자 성념(省念)을 얻고 기쁨을 감추지 못하였다.그리하여
‘정법안장이 그대의 몸에 있으니 이제 죽어도 한이 없노라’하였
다.성념선사가 세상에 나와 수산사(首山寺)주지가 되었을 때 수
산사는 벽지에 황폐한 사찰로 납자라고는 겨우 30여 명에 불과
하였지만 그의 도는 천하에 크게 떨쳤다.
스님(종열)은 성념선사의 6세손이며 운암(雲菴)선사의 맏이다.
스님께서 주지하신 규범은 옛 수산스님에 견줄 만하고,날카롭고
묘한 기봉은 풍혈선사에 비하여 조금도 뒤지지 않았다.나는 얼
마 전 왕명으로 강서 지방의 서안(西安)을 살필 때 용안산(龍安
山)에서 스님과 알게 되었다.손을 마주잡고 밤새워 이야기를 나
누면서 불도의 궁극적인 일과 정통종지의 분명한 요결을 알게
되자 서로의 만남이 늦었음을 탄식하였다.그런데 뜻하지 않게
스님께서 돌아가시니 지혜가 복을 따라주지 않아서 우리 인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