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6 - 선림고경총서 - 24 - 나호야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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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하지 못한 것이 안타까우나,그래도 그 덕이 묻혀질 수 없기에
               뒤 이을 사람이 있음을 다행스럽게 여겼다.소산 요상(疎山了常)
               ․도솔 혜조(兜率慧照)․자운 명감(慈雲明鑒)․청계 지언(淸谿志
               言)등은 각기 한 지방에서 법을 설하여 이름을 날렸고,나한 혜
               의(羅漢慧宜)․양기 자원(楊岐子圓)․광혜 수진(廣慧守眞)․감천

               지선(灨川智宣)등의 제자는 모두 자취를 감추고 전혀 몸을 나타
               내지 않았다.지난날 풍혈선사는 성념 한 사람을 얻은 것만으로
               도 조사의 수명을 이었는데,오늘날 용안산(龍安山)에는 여러 제
               자들이 이와 같이 융성하니,어찌 스승의 영골(靈骨)이 한 줌의
               재가 되어서 남아 있지 않다고 할 수 있겠는가.스님의 도행은
               총림에서 으뜸이며,불조를 빛내고 교화에 도움이 되었으므로 이
               를 세상에 알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기에 특별히 조정에 청하
               니 임금께서는 진적대사(眞寂大師)라는 시호를 내렸다.

                 아!나와 선사와의 신기한 교류는 도(道)로 맺어진 사이이기에
               내 선사를 외호해야 한다는 생각을 잊어 본 일이 없다.비록 죽
               은 자와 산 자가 다르다 하지만 다행히도 내가 세상에 없는 남
               다른 은총을 입고 또 그것을 함께하였으니,우러러 바라옵건대
               영가님이시여,이 영광을 공경히 받으옵소서.”



               뛰어난 유학자 중에 무진거사처럼 불도를 숭상한 사람은 일찍
            이 없었다.그러나 스님의 예리한 솜씨가 아니고서는 거사를 감동
            시킬 수 없었을 것이며,거사 또한 상근기가 아니었다면 이를 쉽

            사리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이다.그의 벼슬이 높아 큰 법시를 펼
            수 있게 되어서는 종열스님과의 도의를 잊지 않고 특별히 시호를
            받들어 올렸으며,자신의 마음을 이토록 정성껏 제문으로 드러내

            었다.이는 아마도 스승을 존경하고 불법을 높이는 것을 환히 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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