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4 - 선림고경총서 - 24 - 나호야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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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 악선사가 세 차례나 도전하였으나 세 차례 모두 떨어지고 말
았던 것이다.이에 대하여 무진거사 장상영이 말하였다.
“설두선사는 비록 기봉(機鋒)이 뛰어났지만 절벽을 바라보고
물러서 버렸으니,스스로를 지키지 못한 것이 아니겠는가?”
32.회당선사께 법문을 청하는 글/서희(徐禧)
용도각(龍圖閣)서희(徐禧)는 원풍(元豊:1082)5년에 우정언(右
正言)에서 위주(渭州)자사로 뽑혀 가게 되었다.그는 분령(分寧)으
로 돌아오자 황룡사의 회당(晦堂)선사에게 운암사(雲巖寺)로 와서
대중설법을 해주도록 청하는 글을 올렸다.
“30년 전의 설법에서는 ‘없을 막(莫)’자 하나도 필요하지 않았
는데 이제는 가시덩굴이 길을 가로막아 모두가 그들의 견해에
따라 종파를 열었습니다.그들은 ‘평지에 해골더미를 쌓는 일은
그만두어라’고 말만 했지 그 평지가 어디인 줄조차 모르고 있으
며,‘죽을 먹고 바리때를 씻어라’하지만 그 바리때가 어느 곳에
떨어졌는지조차 모르고 있습니다.말 끊어진 곳을 배우지 않고,
뿌리에 있으면서도 뿌리로 돌아갈 근거만을 찾고 있으니 나무로
깎은 독수리가 어떻게 새를 잡을 수 있으며 호랑이 가죽을 둘러
쓴 양이 풀을 먹는 데야 어찌하겠습니까.그러므로 이 병폐를 아
는 큰스님들께서 수시로 간절히 부탁하되,모름지기 천 년 노송
아래서 복령(茯笭:노송 아래 기생하는 약초)을 캐도록 하고 백
척간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도록 부추겼습니다.그리하여 해골
이 빙빙 돌 때 가서 눈 위에 눈썹 앉은 것처럼 제자리를 찾아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