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3 - 선림고경총서 - 25 - 종문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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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문무고 上 103
장무진이었다.
상씨는 예의를 갖추어 맞이한 후 그에게 물었다.
“서생[秀才]은 어디로 가는 길이오?”
장무진이 사실대로 말하자 상씨가 말하였다.
“서생이 아직 부인을 맞지 않았다면 내 딸을 그대에게 보내 집
청소하는 일이나 받들게 하겠소.”
무진이 사양하였으나 상씨는 이번 걸음에 급제를 하지 못한다
해도 이 약속을 어기지 않겠다고 다짐하였다.그 후 과연 급제하
여 그의 딸을 부인으로 맞이하였다.
처음 주부(主簿:문서․장부 담당관)로 임명되었는데 사찰에 들
어가 잘 정돈된 장경과 범협(梵夾:작은 불교 문서들)을 보고,우리
공자의 가르침이 오랑캐의 책만큼도 사람들의 숭앙을 받지 못하
는구나 하고 불쾌히 여겼다.
밤새껏 서원(書院)에 앉아 먹을 갈고 붓을 빨면서 종이 위에 기
대어 긴 한숨을 쉬며 야반삼경이 되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자 부
인 상씨가 남편을 부르며 말하였다.
“나리께서는 밤이 깊은데 어찌하여 잠을 이루지 못하십니까?”
무진이 조금 전에 느낀 것을 말하고서 ‘무불론(無佛論)’을 지으
려 한다고 하니 상씨가 응수하였다.
“이미 부처가 없다[無佛]해놓고 무슨 논이 있을 수 있겠습니
까?오히려 ‘유불론(有佛論)’을 지어야 옳겠습니다.”
무진은 그 말을 의아해하다가 결국은 그만두었다.그가 동료의
집을 방문했을 때 불감(佛鑑)앞에 놓인 경전을 보고서 무슨 책이
냐고 물으니 유마힐소설경(維摩詰所說經) 이라고 하였다.그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