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2 - 선림고경총서 - 25 - 종문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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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을 맞춘다.변통(變通)이란 나에게 있는 것인데 어찌 규칙으로
               큰 뜻을 얽어매 옛사람의 규범에 국한되는가?이 때문에 제 자식
               은 가르칠 수 없다고 하였다.가르치는 것은 언어의 찌꺼기이지
               지극히 오묘한 마음의 이치는 아니다.지극히 오묘한 마음은 나
               자신에게 있는 것이지 언어 문자에 있는 것이 아니다.설령 밝은

               스승이 은밀히 전해 주어도 마음으로 스스로 깨닫는 것만 못하
               다.그러므로 마음에서 얻고 손으로 응한다는 말이 있다.이 모
               두가 신령한 심법(心法)의 묘용(妙用)이다.
                 그러므로 보리를 찧으려면 맷돌을 써야 하고 쌀을 찧을 때는
               연자방아를 써야 하고 국수를 뽑으려면 채를 써야 하고 껍질을
               없애려면 부채를 써야 하는데,그 규모와 규칙은 모두 빗장[關棙]
               에 달려 있다.이 소식만 달통하게 되면 모든 것을 조작하지 않
               아도 스스로 돌아간다.물로 비유해 말하자면 한 물결이 움직이

               자마자 앞 물결 뒷 물결 모든 물결이 줄줄이 이어져 끝이 없다.
               맷돌로 말하자면 한 개의 바퀴가 돌자마자 큰 바퀴 작은 바퀴
               모든 바퀴가 움직여 끝없이 돌게 됨과 같다.이로 말미암아 위아
               래가 서로 호응하고 높고 낮은 데가 함께 작동하니 그 묘한 작
               용이란 자연에서 나온 것이어서 사람의 힘을 빌려 할 수 있는
               일이 아닌데도 그 기묘함은 볼 만하다.매우 현묘해야만 좌우로

               돌고 종횡으로 오가면서 서로서로 부딪치며 큰 법음(法音)을 낸
               다.그 법음은 모두가 고(苦)․공(空)․무상(無常)․무아(無我)와
               바라밀(波羅蜜)이니 듣는 자는 그 마음을 듣고,보는 자는 그 성
               품을 보며,냄새 맡고 맛보고 알아차리는 데 이르기까지 모두 법
               희(法喜)와 선열(禪悅)을 얻게 될 것이다.어째서 그런가?쌀과 국
               수 등 여러 가지 공양거리를 만들어 창고와 주방[香積廚]에 공양
               하여 이 두 가지로 선승들과 왕래하는 선불자(選佛者)를 배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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