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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림성사 上 35


               그의 어머니는 스님을 잊지 못하여 눈이 멀었다.다시 괄창 땅
            으로 돌아오니 그의 아버지가 남명사(南明寺)의 주지를 맡도록 강

            요하였고,구주(衢州)오거사(烏巨寺)로 옮기자 스님의 도는 크게
            떨쳐졌으며,요주(饒州)천복사(薦福寺)에서 열반하였다.묘희(大慧
            宗杲)스님이 도행스님의 어록에 손수 쓴 서문이 세상에 널리 전해

            오고 있다.




               13.소 치는 노래/전우(典牛)스님



               전우(典牛)스님은 성도(成都)사람이며 성은 정씨(鄭氏),이름은
            천유(天游)이다.본래 관리의 집안으로 고을의 초시(初試)와 재주
            (梓州)의 복시(覆試)에 모두 급제하였으나 천유는 이를 마다하고

            이름을 숨기고서 관문 밖을 나갔다.때마침 산곡도인(山谷道人)황
            정견(黃庭堅)이 촉 땅에서 동쪽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의 비범한

            기골과 뛰어난 논변을 보았다.마침내 그와 함께 배를 타고 여산
            에 갔고,그는 머리를 깎았지만 옛 이름은 바꾸지 않았다.
               맨 처음 사심(死心悟新)스님을 찾아뵈었으나 기연이 맞지 않자

            늑담사(泐潭寺)담당(湛堂文準)스님에게 귀의하였다.당시 묘희스
            님은 시자였고,천유스님은 서사(書司)를 맡고 있었기에 아침저녁

            으로 서로 함께 지냈다.그 후 고약산(古藥山)에 가서 생사대사를
            밝히고 여산의 소보봉사(小寶峰寺)의 주지를 지냈으며,뒤에 운암
            산(雲岩山)에 주석하였다.

               일찍이 충도자(忠道者)의 ‘목우송(牧牛頌)’에 화답시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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