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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림성사 上 95
그는 총림변영편(叢林辨佞篇)을 지었는데,꼬리를 흔들면서
아첨하거나 환심을 사려는 당시의 무리들을 풍자한 글로서,문장
과 의미가 뛰어나며 원극 언잠(圓極彦岑)스님이 친히 발문을 썼다.
대중에 들어오는 후배라면 이를 몰라서는 안 될 글로서 그 내용
은 다음과 같다.
우리 조정의 정국공(鄭國公)부필(富弼)은 투자 수옹(投子修顒)
스님에게 도를 물었는데,서간문이며 게송이 무릇 열네 두루마리
가 되며,태주 홍복사(鴻福寺)양 회랑벽의 사이에 새겨 놓았다.
이것으로써 선배들의 법을 주관함이 준엄하였고,왕족 귀인들의
도를 믿음이 독실하였음을 또렷이 볼 수 있다.정국공은 사직의
중신(重臣)으로서 만년에 이르러 갈 곳을 앎이 이와 같았으며 수
옹스님은 보통 스님보다 뛰어난 인물이었다.정국공은 스스로
“수옹선사에게 깨우침을 얻은 바 있다”고 말하였다.
사대부 가운데 참으로 불도를 믿고 능히 나이를 잊고 세도를
부리지 않고서,맹렬하고 예리하게 분발하여 반드시 깨우침 얻으
리라고 기약한 사람으로는,시랑(侍郞),양대년(楊大年),도위(都
尉)이화문(李和文)등이 있는데,광혜 원련(廣慧元璉)과 석문 온
총(石門蘊聰)및 자명(慈明:石霜楚圓)노스님들을 친견하여 격려
받고 글을 주고받았던 사실이 여러 선서(禪書)에 분명하게 나타
나 있으며,양무위(楊無爲)는 백운 수단(白雲守端)스님에게,장무
진(張無盡)은 도솔 종열(兜率從悅)스님에게 사사하여 모두 관문의
요소를 두드려 철저히 근원을 파헤쳤는데,이는 함부로 한 것이
아니었다.
근세에 이르러서는,시랑(侍郞)장무구(張無垢),참정(參政)이한
노(李漢老),학사(學士)여거인(呂居仁)등이 모두 묘희(妙喜)노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