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7 - 선림고경총서 - 27 - 운와기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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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와기담 下 147
從來謾得兒孫好 辯湧海潮聲浩浩
明如皓月當空照 飛錫西歸雲杳渺
巴猿嘯 大家唱起還鄕調
건도(乾道)7년(1171)에 임평(臨平)명인사(明因寺)의 주지로 옮
겨갔다가 순희(淳熙)4년(1177)6월에 무위군(無爲軍)에서 그의 아
들 양첨판(梁簽判)과 이별하고 곧바로 광효사(光孝寺)의 법상에서
앉은 채 서거하였다.머리를 깎으니 무수한 사리가 나왔으며 당시
삼복 더위였으나 며칠이 지나서도 그의 용모는 엄연하였다.자수
사(資壽寺)에 머무르다가 그의 제자 각진(覺眞)이 고소사(姑蘇寺)로
모시고 돌아가 잠시 능가산(楞伽山)에 초빙하였다.11년 후에 그의
아들이 삼구(三衢)로 옮겨갔는데 뼈를 봉안했던 감(龕)을 땅 속에
서 파내자마자 샘물이 솟아나오니 승려나 속인들이 모두 놀라 공
경하였다.이는 반야의 영검이 아니겠는가?
9.유정(惟正)선사의 행적과 법문
유정(惟正)선사는 수주(秀州)화정 황씨(華亭黃氏)자손이다.5
세에 불서를 보고 글자를 짚어낼 줄 알았으며 읽어주기만 하면
낭랑히 외웠다.20세에 항주 북산 자성사(資聖寺)에 찾아가 본여
(本如)선사에게 사사하니 그 고을 주소안(朱紹安)이 자기 돈을 내
어 승적을 얻는 데 보탬이 되겠다고 하였으나 승낙하지 않고 슬
픈 어조로 말하였다.
“옛날에는 맑은 인연과 깊은 종지로 승려를 만들었으나 지금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