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8 - 선림고경총서 - 27 - 운와기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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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그렇지 않습니다.나이가 많든 적든 상관없이 삭발하고 승복
을 입는 것으로 따질 뿐이니,참됨이 거짓을 이기지 못하고 그저
모두들 되는대로 쏠려 가는 데야 어쩌겠습니까!”
얼마 후 상부(祥符:1008~1016)연간에 큰 은전을 입었으나
그는 오로지 낡은 승복을 안고 있을 뿐이었다.도반 하나가 업신
여기자 그가 말하였다.
“부처님 부처님 하는 것이 그 모습을 두고 하는 말이며,스님
스님 하는 것이 옷차림을 가지고 하는 말이겠느냐.”
그 후 일 년 살림살이를 차례로 맡으며 본여(本如)선사의 일을
잇게 하자는 사람이 있었으나 역시 사절하면서 말하였다.
“탁발 걸식한다는 말은 들었으나 편안히 앉아서 받아먹는다는
말은 듣지 못했고 여러 조사를 낱낱이 배알한다는 말은 들었으나
배우기를 그만두고 스스로 자부한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다.하물
며 나는 나이도 젊고 기력도 좋으니 힘써서 조사들에게 참례할
때이지 집안 일을 할 때가 아니다.”
이에 지팡이를 들고 행장을 꾸려 동쪽으로 가 천태산에서 세
가지 관법[三觀]을 배우고 다시 경산사로 발길을 돌려 노스님 거
소(居素)선사에게 단전직지(單傳直指)의 종지를 물었다.그리고는
임안부(臨安府)공신산(功臣山)정토원(淨土院)에서 거소선사를 모
시고 힘을 다해 일을 하다가 천희(天禧:1017~1021)연간에 거
소선사가 입적하자 많은 사람의 뜻에 따라 자리를 이어받았다.
유정선사는 학문이 높고 풍부하여 시에는 도연명(陶淵明)․사
령운(謝靈運)의 운치가 있었으며 글씨에 있어서는 왕희지보다도
더욱 간략하고 순박함을 존중하였다.이론에도 탁월하고 말솜씨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