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2 - 선림고경총서 - 27 - 운와기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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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 성한 덕이 아주 쇠하지는 않았음을 알겠노라.
臨淮大士本無私 應物長於險處施
親護舟航渡南海 知公盛德未全衰
16.시 잘 쓰는 원두(園頭)신 무언(信無言)스님
남창(南昌)땅 신 무언(信無言)스님은 일찍이 시를 잘 쓴다고
명성이 총림에 자자하였다.서사천(徐師川)과 홍옥보(洪玉父)가 그
의 시를 평하면서 수권(瘦權)나가(癩可)보다도 운치가 고상하다고
하여 이로 말미암아 두 시인에게 그 명성을 얻게 되었다.그가 천
남(泉南)소계암(小谿庵)으로 대혜 노스님을 찾아가 강(康)도인,남
(南)도인 두 분과 함께 채소 밭 일을 맡아 대중을 공양할 때였다.
한번은 호미로 밭을 매던 차에 남도인이,
“호미를 가지고 한마디 해보라.”
하니,신선사는 호미 끝을 들어 세웠다.강도인이 흙덩이를 던져
호미자루를 맞추자 이에 신선사가 갑자기 깨닫고는 시를 읊었다.
소계(小谿)에 새 암자 지으니
준수한 인재 자못 호탕하구나
그들을 따라 불조로 삼고
그들 마음대로 선도를 깨치게 하리
어깨에 호미 메고 동쪽 채소밭에서
채소를 가꾸며 일생을 마치겠노라 맹세하였다
달빛 타고 비로소 항아리 같은 달 그림자 껴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