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90 - 선림고경총서 - 27 - 운와기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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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려는 즈음에 하늘을 우러러 멀리 성상의 얼굴을 바라보자니
복받치는 슬픔과 방황하는 마음 이기지 못하여 삼가 글을 받들
어 하직을 아뢰옵나이다.”
대각선사가 강을 건너 금산사(金山寺)에 잠시 머무르다가 서호
에 이르니 사명(四明)군수가 육왕사(育王寺)에 자리가 비었다고
선사를 맞이하였다.이때 봉화(奉化)의 구봉 소(九峰韶)선사가 ‘치
소권청소(緇素勸請疏)’를 지었다.
“무령(鄮嶺)은 빼어나고 절은 매우 엄숙한데 안개구름이 가리
고 금빛은 찬란합니다.이와 같은 절경은 누구를 기다림이겠습니
까?그렇지 않다면 밝은 달이 하늘에 흐르면 어둠이 흩어지듯 도
인이 세상에 응함도 방편 따라 머무르는 것이니 어찌 작은 일로
큰 법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선사의 도는 주상의 마음에 부합되
고 천하에 이름을 떨쳤으니 우리 모두가 빛나게 되었음도 이런
연유에서입니다.그러나 동남쪽은 우리 종파가 쇠퇴해 갑니다.
구제하려 해도 마치 썩은 새끼로 달리는 수레를 모는 것처럼 점
점 이교도들에게 우리 종파가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앉아서 보
게 할 처지입니다.선사께서는 이 말을 듣고서 어떻게 하시렵니
까?도가 높고 지위가 높으니 이 이치를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성심으로 속마음을 드러내도 감히 하고픈 말을 모두 글로 쓸 수
없기에,우리 대중들은 오직 몸바쳐 멀리 선사가 오시는 발자국
소리를 듣고파 합니다.”
대각선사가 이 글을 읽은 뒤 그 상황이 절실함을 딱하게 여겨
흔쾌히 허락하였다.이 일로 총림에서는 대각스님이 구봉스님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