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07 - 선림고경총서 - 27 - 운와기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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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와기담 下 207
의 주지를 물려받았다.그 후 천령절(天寧節)의 은례(恩例)에 따라
보각대사(寶覺大師)라는 호를 얻게 되었다.
선화(宣和)원년(1119)정월에 조서를 내려 승려를 덕사(德士)로
바꿔 부르게 하니 영도(永道)스님은 율사 오명(悟明)과 화엄강사
혜일(慧日)과 함께 도사 임영소(林靈素)에게 이 조치의 잘잘못을
항변하고 조정에 호소하다가 황제의 비위를 거슬려 도주(道州)로
유배되었다.선화 2년 6월에 사면령이 내려 다른 곳으로 옮겨가게
되었는데 도중에 장사(長沙)를 지나다가 적음(寂音)존자를 만나니
그가 시를 지어 주었다.
영도의 큰 간담 몸통보다도 더 커서
황제 비위 거슬리는 상소를 하였구려
다만 불법을 짊어지고자 하였을 뿐
길게 목을 뽑아 칼날을 달게 받네
3년 귀양살이에 부끄러운 마음 없고
만리 길 돌아와도 수척하지 않은 얼굴
뒷날 교문의 기강을 바로잡을 사람들이
신발 신고 홀을 잡고서 조정으로 달려간다 하네.
道公膽大過身軀 敢逆龍鱗上諫書
只欲袓肩擔佛法 故甘引頸受誅鋤
三年竄逐心無媿 萬里歸來貌不枯
佗日敎門綱紀者 近聞靴笏趂朝趨
이어 편한 장소로 보내라는 명이 내렸다.선화 7년 5월에 보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