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25 - 선림고경총서 - 27 - 운와기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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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와암주서 225
머지 서로가 출자하여 작게나마 장경각을 지은 후 재물과 법이
일어나 하루하루 지낼 만하였습니다.그러나 계묘(1183)년 급작스
런 제자의 죽음으로 마침내 손수 청소를 해야 했고,땔감이며 양
식을 마련하느라 다른 생각을 할 겨를조차 없이 그저 잠이나 푹
잤으면 하는 생각뿐입니다.
형께서 상람사의 주지를 그만두고 산간에서 고요를 즐긴 지 11
개월 만에 남원(南源)선사의 명으로 청원사(靑原寺)조실로 옮겨갔
는데 그곳의 인연과 법회가 자못 성대하다 하고,또한 두세 명의
스님이 죽비 쓰는 일을 외롭게 하지 않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형이 쓰시는 죽비는 대혜(大慧)노스님이 매양(梅陽)에서 보은사
(報恩寺)로 와서 입실하는 납자들을 위해 썼던 것으로,무착(無着)
선사가 일찍이 명(銘)을 지어 그 유래를 기록하였는데,거기에 기
록된 글을 인용합니다.
대혜 노스님이 이 죽비로 부처와 조사가 전하지 않은 묘한 이
치를 들어 보여주신 지 거의 40년,마침내 임제의 정통을 일으켜
세웠으며,아무리 어려워도 이 죽비 들기를 게을리한 적이 없었
다.이런 까닭에 매주(梅州)보은사에서는 당사(堂司)를 두어 그것
을 소장하게 되었다.강서(江西)영 중온(曉瑩仲溫)이 일찍이 당사
를 맡고 있다가 이 죽비를 얻어 가니,어찌 천 년에 한 번이나
있을까 한 총림의 영광에 그치겠는가.이에 무착 묘총(妙總)은 삼
가 머리 조아려 명을 쓰는 바이다.
남산의 대나무
깎지 않아도 스스로 유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