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29 - 선림고경총서 - 27 - 운와기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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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와암주서 229
왕이 부처님에게 설법을 청한 것을 대답함이 아니다.내 자세한
내용을 운와기담 에 기재한 바 있으니,여기에서까지 낱낱이 말
하고 싶지 않다.
또 초당(草堂)스님이 쓴 찬(讚)은 소흥(紹興)10년 보봉사(寶峰
寺)의 화주가 경산사에서 구한 것이다.당시 초당스님은 아직 건
재할 때였다.그러므로 ‘째째한 마구니들아,알겠느냐?이는 우리
불가의 진정한 백미(白眉)다’라는 구절은 소흥(紹興)13년 형양(衡
陽)에서 지어진 것이 아니다.
또 참정 이태발(李泰發)이 보낸 절구시의 서(序)에 이런 내용이
있다.형양에 갔을 때 그 고을에서는 순정(旬呈:10일마다 올리
는 보고서)의 부담을 면하고자 한다 하니 대혜스님은 의연히 안
된다고 하면서,나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누를 끼치지 말라고 하
였다는데,이 마음을 어찌 세속인으로서 엿볼 수 있겠는가?이에
감탄하여 짧은 시 한 편을 짓는 바이다.
열 이랑의 묵은 밭에 띠풀집 지으니
겨자와 송이나물 다 뽑혀 다북쑥 같구나
납승으로 돌아가라는 성상 윤허 없기에
섬돌 앞에서 몇 차례나 굴렀던가.
十畝荒園旋結茅 芥菘挑盡到同蒿
聖恩未許還磨衲 且向堦前轉幾遭
이는 소흥 11년 겨울에 지은 것이지 20년에 지은 것이 아니다.
대혜스님이 처음 형양에 왔을 때 성안의 요사호(廖司戶)의 집 서
쪽 언덕에 암자를 마련했다.그 연보에는 ‘열 이랑’이 ‘10리’로
되어 있으니 형양성 어디에 10리나 되는 동산을 용납할 곳이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