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28 - 선림고경총서 - 27 - 운와기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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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이 담긴 마음은 예전과 다름없었습니다.옛 조사의 도는 정작
주맹(主盟)을 의지하고 본색납자들이 이에 귀의하니,어찌 지난
여름에 갑자기 총령(葱嶺)을 넘어갔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마는
형은 반드시 초조했을 것입니다.하물며 강호의 도반들은 서리맞
은 낙엽처럼 병들고 죽어가 이젠 얼마 남지 않았음에야…… 사
람을 더욱 슬프게 만듭니다.
얼마 전 화장사(華藏寺)의 연(璉)형이 보안사(保安寺)에 주지할
때 하루는 편지를 보내 왔습니다.그 편지에 조영(祖詠)이 월(越)
땅 흥선사(興善寺)의 주지로 있은 지 몇 해 지나 임안(臨安)에 있
을 때,대혜선사의 생애와 행적을 모아서 연보(年譜)한 권을 만들
었다고 합니다.그리고는 경산사에 가기 전에 선배들과 함께 자세
히 살펴보니,급히 간행하느라 빠진 부분이 많더라는 것이었습니
다.이에 그에게 답서를 보내 오류를 바로잡은 일이 있었는데 형
에게 몇 가지를 요약해 드리겠습니다.
스승(대혜)께서 형남(荊南)땅에 두 번째 갔을 때 무진거사 장
상영이 묻기를,요순우탕(堯舜禹湯)은 옛 성인인데도 어째서 불전
에 언급이 없느냐고 하니,대혜선사는 범천왕(梵天王)과 제석(帝
釋)의 설법 인연을 들어 대답하였다고 하는데,*그 논지가 이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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럼 간략하면 불교를 배척하는 사람들의 비난을 늘리기에 꼭 알
맞다.그 당시 문답했던 바에 근거해 보면 심오한 이치가 있었
다.노스님께서 소흥(紹興)9년(1139)에 시강(侍講)윤언명(尹彦明)
을 위해 설법하자 윤언명이 재삼 수긍하였다는 것으로 보아 범
*이 책 하권 p.179#24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