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32 - 선림고경총서 - 27 - 운와기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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祖宗活計都壞了 不知將底付兒孫
노스님이 이미 이렇게 하셨는데 굳이 정통 법어를 취하여 법굉
과 도선에게 부촉했겠습니까?
또한 ‘형과 연(璉)밀(密)연(禋)이 노스님의 어록에서 강요(綱
要)만을 간추려 5권으로 떼어냈다’하는데 ‘간추렸다’면 이는 번거
롭고 쓸데없는 말들을 삭제한 것일 테니 그 사이에 빼고 넣은 것
이 없지 않았을 것입니다.이를 세상에 내보여서는 안 될 듯하니
부질없이 총림에다가 눈먼 아란존자만 늘렸다는 탄식만을 더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종문무고 에 기재된 일을 고찰하면서도 종문무고 가
나오게 된 단서와 유래는 자세히 서술하지 않고 있습니다.이제
간략하게나마 종문무고 의 발단을 말해 보고자 합니다.소흥 10
년(1140)봄,신 무언(信無言)등 몇 사람이 경산사에서 전후하여
노스님께서 말씀한 고금의 이야기를 모아 한 편의 책을 만들었는
데 복청(福淸)의 진(眞)형이 진서(晉書) 「두예전(杜預傳)」의 ‘무고
(武庫)’란 두 글자를 가지고 장난 삼아 책이름을 붙였습니다.소흥
11년 4월에 노스님께서 법좌에 올랐을 때 마침 장(張)시랑이 법회
에 참석하니 노스님은 이로 인하여 설법하였습니다.
‘장위공(張魏公)의 형 장소원(張昭遠)이 원오(圜悟)선사를 찾아
뵈니 원오스님이 그에게,철전선(鐵剗禪)을 하라고 하였다.그러
나 나는 지금 장시랑의 선을 신비궁(神臂弓)이라고 하니 게송으
로 내 뜻을 나타낼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