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7 - 선림고경총서 - 27 - 운와기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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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와기담 上 37
(雍州)호현(鄠縣)백운산(白雲山)정거선원(淨居禪院)에서 출가하
였다.
대중 상부(大中 祥符)2년(1009)4월 8일에 쓰다.
그러나 세간에 전해 오는 것은 “불법이 널리 퍼져……”에서
“부동심을 얻었다 할 수 있겠는가?”라는 구절까지밖에 없다.이
때문에 황태사(黃太史)가 지담수(芝曇秀)에게 답한 서간에는 “사씨
는 전조(前朝)의 명사로서 양문공(楊文公)과 왕문혜공(王文慧公)의
문하에서 공부하였고 참선과 도학으로 한소식 한 자이다”라고 말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승당기’는 아마 다른 사연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사씨는 어린 나이에 낭야 각(瑯琊覺)선사에게 공부하면서 몸소 나
무하고 물긷는 일을 하였다.낭야선사가 삼조(三祖)선사 ‘신심명
(信心銘)’에 주석을 달아 보여주자 윗줄은 큰 글씨로,아랫줄은 작
은 글씨로 한 구절 한 구절 베껴 쓰면서 몇 구절 안 가서 그 뜻을
훤히 깨치니 각선사가 그에게 말하였다.
“노승이 일생 동안 허공에 그린 그림을 당장에 토해내야 되겠
구나.”
일찍이 묘희(妙喜)노스님도,대관(大觀:1107~1110)연간에
태평주(太平州)의 노스님들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