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8 - 선림고경총서 - 27 - 운와기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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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세상에서는 그를 ‘유도자(劉道者)’라 불렀다.얼마 후
그는 제자에게 고하였다.
“내가 머지않아 선정에 들어갈 것이니 벽돌과 진흙으로 내 몸
을 감싸 두어라.3년 뒤에 너희와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되자 과연 그의 말대로 선정에서 깨어났고,그의 법력
이 남달라 사찰을 낙성하게 되었다.
천희(天禧)2년(1018)섣달 그믐 이틀 전 다시 정(定)에 들어가
면서 그의 제자들에게 “49년이 지난 뒤 나의 무덤을 열어 보면
내가 눈을 감고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치평(治平)3년(1066)은
그가 말한 해였으므로 그 사찰의 승려가 이 사실을 태수 정벽(程
闢)에게 알렸다.태수는 관료를 거느리고 그의 무덤을 살펴보니
단정히 가부좌를 하고 앉아 있었다.이에 향니(香泥)로 상을 만들
어 후세에 전하고,법당 서쪽 별채에 봉안하여 백성들의 기도처로
삼았다.
연선사는 자비와 원력이 크고 깊었기에 이와 같이 티끌 세상으
로 머리를 돌리고 친절하게 방편을 열어 주셨다.
14.고산사(鼓山寺)에서 간행된 어록
소흥(紹興:1131~1162)연간 초에 복주 고산사(鼓山寺)에서
스물두 분의 옛 큰스님 어록[古尊宿語錄]을 간행하였는데 홍주(洪
州)취암사(翠巖寺)의 지(芝)선사도 그 중 한 분이다.지선사가 군
성(郡城)에서 개당법문을 할 때 어느 사람이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