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2 - 선림고경총서 - 27 - 운와기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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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동파의 묘지명을 쓸 때 이 사실을 첫머리에 기록하였다.”
               “ 금전을 시주한다는 근거가 있습니까?”

               “ 그대는 모시(毛詩)의        소아 녹명(小雅鹿鳴)편을 보지 못했습
            니까?많은 신하와 손님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 때 음식을 대접한
            다음 다시 광주리에 예물을 가득히 채워 성의를 나타낸 바 있습

            니다.이는 음식만으로는 존경의 마음을 모두 표현하기 어렵기 때
            문에 다른 선물을 주어 정성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를 위하여 정진공(丁晉公)의 재승소(齋僧疏)를 외

            워 주었다.


                 “부처님은 두루한 지혜를 내리시고 도로써 많은 중생을 기르
               시어 위태로움을 구제할 때에는 반드시 미리 큰 복을 내리십니

               다.나는 천민으로서 관록을 받게 되어 외람되게 재상의 중책을
               맡았고 성상의 은총과 선황제의 넓으신 보살핌으로 중산보의 곤
               룡포를 입게 되었습니다.정성을 다해 부열(傅悅:商代의 신하.
               충성스런 간언을 하다가 끓는 국솥에 던져졌다)의 국을 끓였으

               나 많은 사람의 입맛에 맞추기는 어려웠습니다.
                 어느 날 밤 깊은 잠결에 갑자기 부처님이 나타나시어 현묘한
               가르침으로 시원시원하게 세속에 찌든 마음을 깨닫게 해주셨으
               나 비밀스런 참 모습을,안타까워라!범인의 눈으로 어찌 알 수
               있겠습니까.지혜가 몸에 가득하지 못하여 일은 영영 어긋나고

               해가 다가오고 재앙이 임박해도 헤아리지 못하다가 재앙이 닥치
               고 난 뒤에야 예삿일이 아닌 데 놀랐습니다.벼슬에서 쫓겨나
               서경을 향할 적에 성은이 너그러우심에 감격하였고 남쪽 땅의
               귀양살이에 충성으로 마음 달갑게 여겼습니다.허물은 내 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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