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4 - 선림고경총서 - 27 - 운와기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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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며 큰 일이 없으면 성으로 들어오지 않았다.그를 찾아가고 수
            시로 양식을 보내 주는 사대부들이 많았으나 몇 말 이상은 받아

            들이지 않았다.그 양식을 병 속에 담아 책상 위에 올려놓고 하루
            두세 홉만을 먹었으며 채소마저도 항상 있는 건 아니었다.”
               소동파가 영남에 있을 때,마침 어느 사람이 서호에 간다기에

            그를 통해 서찰을 보내 왔다.
               “수운 순(垂雲順)스님은 내가 고을을 다스릴 때 서로 오가면서
            시를 읊던 벗[詩友]이었다.그는 청렴하고 절개가 있으며 몹시 가

            난하여 겨우 끼니를 이을 뿐 언제나 부족한 상태였다.그러나 그
            는 한번도 근심하는 빛이 없었는데 이제는 늙었다.아직도 건강하
            신지?”

               아!지금의 우리들은 청빈을 치욕으로 여기고 많은 축적을 영
            예로 아니,죽어서 지옥으로 떨어지지 않을 자가 거의 없을 것이

            다.만일 그들이 조금치라도 순선사의 풍모를 사모한다면 어찌 죽
            은 후 오명을 남기겠는가?




               27.한림학사 왕조(汪藻,汪彦章)가 여러 스님들을 뵙다



               한림(翰林)왕언장(汪彦章)이 소계(苕谿)를 다스릴 무렵 불법 늦

            게 만난 것에 한탄을 하며 쉬는 날[休沐日]이면 반드시 여러 사찰
            의 노장선사와 함께 법담을 나누었다.사계사(思谿寺)의 자수(慈受)
            선사,도량사(道場寺)의 보명(普明)선사,하산사(何山寺)의 불등(佛

            燈)선사가 그의 서재에 앉아 있었는데 서재의 벽 위에 걸어 놓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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