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7 - 선림고경총서 - 27 - 운와기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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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와기담 上 77


               “무엇이 신흥원의 물입니까?”
               “ 바로 앞에 보이는 강물이지!”

               이제는 절 이름을 명심원(明心院)으로 바꾸었다.
               송대 초기(960년대)에 도령(道寧)이라는 스님이 있어 존자의 사
            당에 존자가 어느 승려를 송별하며 지은 게송을 예서로 썼는데

            대관(大觀:1107~1110)연간까지도 허물어진 벽 사이에 그 글씨
            가 남아 있었다.



                 몸은 구름 같고 모습은 조사 같아
                 몸 속엔 아무 상대도 없네
                 지팡이 비껴 들고 사람을 돌아보지 않은 채
                 곧바로 만학천봉 깊은 골로 들어가네.
                 身如雲兮貌如祖 及至身中無伴侶

                 楖木栗橫擔不顧人 直入千峰萬峰去


               이제 총림에서는 이 게송의 뒤 2구만을 음미해 올 뿐이며 누구
            의 작품인지조차 모르고 있다.심지어 전등록 에서는 존자의 이

            름마저 빠져 있으니 참으로 한심스러운 일이다.




               29.운봉(雲峰)선사의 후신(後身),대혜선사



               대혜(大慧)노스님은 대관(大觀)정해(丁亥:1107)년에 나이 19
            세였다.태평주(大平州)은정사(隱靜寺)를 지나는 길에 두 승려와

            함께 배도암(杯渡菴)에 이르렀는데 개가 사납게 짖어대자 두 승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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