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1 - 선림고경총서 - 27 - 운와기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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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와기담 上 81


               정벽이 예장 태수로 있을 당시는 치평(治平)3년 병오년(1066)
            이었는데 그때 조정에 아뢰어 명당(明堂)의 사령(赦令)에 준하여

            이름이 붙지 않은 사원을 조사하여 선례에 따라 사원의 이름을
            내리도록 하였다.이를 계기로 예장 관내의 율원(律院)도 모두 이
            름[額]을 얻게 되었는데 오늘날 그것이 정공의 공임을 아는 사람

            은 거의 없다.그러나 그가 남선사의 도를 존경하지 않았다면 어
            떻게 이처럼 정성껏 불문을 보호할 수 있었겠는가?




               31.유방명(劉方明)과 돌 관음상



               조양(潮陽)유방명(劉方明)이 소흥(紹興:1131~1162)연간에 기
            부(虁府)태수로 있을 때였다.어느 날 밤 고을의 누각에 올라갔다

            가 흰 광채가 땅에서 뻗어 나오는 것을 보고 사람을 시켜 그곳을
            조사해 보도록 하였더니 군영의 훈련장이었다.동이 트기를 기다려

            몇 자를 파다가 그 속에서 한 말쯤 되는 바위를 발견했는데 그것을
            절반으로 쪼개자 빛나는 하나의 원상(圓相)이 나왔다.유씨가 기뻐
            한 나머지 서석찬(瑞石讚)을 지어 바위에 새기려고 하였는데 때

            마침 감선자(鑒禪者)라는 이가 그곳을 지나다가 일러주었다.
               “어찌하여 원상에다가 불상을 새겨 사람들이 신앙하는 터전으

            로 삼지 않는가?그 광채는 불상이 아니면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유씨는 그의 말을 수긍하여 이백시(李伯時)가 그린 관음상을
            조각하였다.당시 대혜스님이 형양(衡陽)에 계셨는데 그에게 찬(讚)

            을 부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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