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5 - 선림고경총서 - 28 - 고애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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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애만록 中 115
지난날 송원스님이 대중스님으로 있을 때,세상일에 너무 어두
웠으므로 그를 대신하여 소암스님이 자질구레한 일까지 모두 책
임졌었다.송원스님이 영은사(靈隱寺)의 주지가 되었을 때 소암스
님은 고향 마을 영암사(靈岩寺)에 있었는데 배를 마련하여 항주(杭
州)에 가서 송원스님을 방문하였다.절에 도착한 지 사흘 만에야
겨우 만나게 되었는데도 송원스님은 전혀 미안해하는 기색이 없
었다.그 후 송원스님이 법화사(法華寺)에 주지해 달라는 청을 받
고 떠나가면서 영은사는 그를 대신하여 소암스님이 맡도록 힘써
추천하였다.이러한 선배들의 경계는 말 한마디만 잘못 해도 일생
동안 한을 품는 요즘 사람과는 너무나 큰 차이가 있기에 이를 기
록하여 후세 사람에게 귀감이 되고자 하는 바이다.
13.율종을 진작하다/소옹 묘감(笑翁妙堪)선사
소옹 감(笑翁妙堪)선사는 도풍이 준엄하고 기개가 사방을 덮었
다.처음 태주(台州)보은사(報恩寺)에 주지할 때,태주에는 예로부
터 율종(律宗)이 없었는데 스님이 군수 제석(齊碩)과 상의하여 열
개의 사찰을 하나로 합하고 단(壇)을 쌓아 남산(南山:律宗)개차
지범(開遮持犯)의 법풍(法風)을 제창하여 후학을 격려하였다.그
뒤 평강(平江)호구사(虎丘寺)로 옮겨가서는 민주자사 왕거안(閩州
刺史 王居安)이 다시 설봉사(雪峰寺)로 그를 청하고 조정에 상소하
였다.
“남부지방에는 불법이 흥성하지 못하니 소옹스님의 힘을 빌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