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9 - 선림고경총서 - 28 - 고애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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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애만록 中 129
노력하면서도 좀더 틈이 없을까 걱정하는 것입니다.그러나 어
째서 어려운 일을 찾아 쉬운 것을 버리며 그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하는 것일까요?이는 전일하게 공부해서 체득한 바 없기에 크
게 쉬는 경지[大休歇田地]에 이르지 못하고 부질없이 지식과 견
문을 통한 이해만을 이루어 자신의 눈을 가리기 때문에 모든 것
이 거꾸로[顚倒]되는 것입니다.
선배의 말씀에 ‘진실로 이 일을 깨달으려면 절대로 이 종경
록 을 보아서는 안 된다.이 책을 읽으면 선입견이 생겨 화두를
들기도 전에 이미 알아버리고 다시는 의문을 갖지 않는다.그리
하여 성불의 방편을 잃게 되니 이는 도로 들어가는 길이 아니므
로 비록 세상에 이로운 책이라 하지만 실제로는 해가 된다.이
는 마치 진조상서(陳操尙書)가 참선하는 시늉을 하다가,운문스
님에게 한 스님이 ‘무엇이 교의(敎意)입니까’한 물음에 대해 무
어라고 의견을 꺼내려 하였으나 말을 하려다가 말을 잃고 생각
을 하려다가 생각을 잃어 결국 운문스님에게 재물을 몰수당한
바로 그런 류이다’라고 하였습니다.이제 거사께서 법보시로 큰
시주를 하려거든 반드시 금강권이나 율극봉,쇠로 만든 찰떡으
로 불사를 하셔야지,사람들을 번뇌의 소굴로 끌고 들어가 속박
만을 더해 주어서 어찌하려 합니까.
이는 붓 가는 대로 적다 보니 글이 구질구질하게 되었습니다.
언제 짬이 생기면 불러 주십시오.그대를 찾아가 여러 소리 한
죄를 사과하리다.”
국사 진공이 이 서신을 보고 깨우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