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8 - 선림고경총서 - 28 - 고애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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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었는가?’라고 물으셨습니다.경은 부처님의 말씀이며 선은 부처
님의 마음으로,애초에 다를 것이 없습니다.다만 세상 사람들이
언어문자만을 쫓아 교(敎)라는 그물에 걸려 자기 자신에게 한 줄
기 빛과 큰 일이 있는 줄을 모를 뿐입니다.그러므로 달마스님이
서쪽에서 온 이후 문자를 세우지 않고 사람의 마음을 그대로 가
리켜 견성성불하도록 하였으니,이를 교외별전(敎外別傳)이라 이르
는 것입니다.이는 교(敎)밖에 하나의 도리가 아니고 이 마음을
밝히되 교상(敎相)에 집착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이제 만일
부처님의 말씀은 외우기만 하고 이를 자신에게 되돌릴 줄 모른다
면 그것은 마치 타인의 보배만 헤아려 볼 뿐 자신에게는 반 푼 어
치도 없는 것과 같으며,또한 헤진 헝겊으로 진주를 감싼 후 문을
나서자마자 흘려 버리는 일과 같습니다.설령 중도에서 조그마한
재미를 얻었다 하더라도 이는 오히려 본분의 일에 있어서는 법애
(法愛)의 견해입니다.이른바 황금가루가 아무리 귀하다 하지만 눈
속에 들어가면 티끌이 되는 법이니 깨끗한 것도 깡그리 닦아내야
만 비로소 약간 상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제껏 대장경을 열람해 보지는 못하였지만 화엄경 ,
원각경 , 유마경 따위를 외워 조금은 익숙하고,그 밖의 전등
록 ,여러 스님의 어록과 연수스님의 종경록 을 모두 음미하며,
수십 년 간을 두문불출하였지만 경전의 논소를 볼 여가는 없었습
니다. 능가경 은 비록 달마스님의 심종으로서 구두점마저 통달하
기 어려워 깊이 연구할 수는 없었지만 요컨대,우리 모두가 진실
한 마음을 지녀 저 세속 사람들처럼 자신을 속이고 불경을 말재
주나 돕는 것으로 생각해선 안 된다는 점을 알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