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4 - 선림고경총서 - 28 - 고애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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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선승이 선방에서 하는 법어는 모두가 지식과 견해로써 하는
말이니 어떻게 깨달을 수 있겠는가.말 밖에서 상황에 응하여 특
별히 의지와 지혜가 있어야만 비로소 흙탕물을 떠날 수 있을 것
이다.내가 옛날 행각승일 때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어느 동행
과 함께 합주(合州)조어사(釣魚寺)에 방부를 들이게 되었다.거기
에는 선배 노스님 한 분이 계셨는데 내가 그의 방에 두세 번 들어
갔을 때는 나를 그냥 놔주고 그도 법을 거론하지 않았으나 동행
스님들은 그냥 두지 않고 무릎을 한 번 두드려 주면서 ‘그대는 여
기서 한마디 내놔 보아라’하였다.동행하던 스님이 아무 말이 없
었지만 그 방에 들어갈 때마다 노스님이 똑같은 말을 하니 동행
스님이 내게 말하기를 ‘저 분은 번번이 똑같이 묻는데 나는 대답
할 것이 없으니 견디기 어려운 일이다.그대는 나를 위하여 한마
디 가르쳐 다오’하니 파암 노화상이 말하였다.‘그가 이번에도 또
다시 그처럼 물으면 그대는 두 손가락으로 코를 쥐고 그에게 코
를 풀어 주고서 곧장 나와 버려라.’그리하여 그의 방에 들어가
가르쳐 준 대로 하였더니 그 스님이 ‘어떤 사람이 너를 아주 망쳐
놓았구나!’라고 하였다.”
참으로 이 도리를 깨달은 자는 마치 두 개의 거울과 같아서 자
연히 피차간에 속이지 못하는 법이다.공부를 하려면 반드시 요긴
한 곳을 살펴서 이러한 경지에 도달해야 종초(種草)를 감당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