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5 - 선림고경총서 - 28 - 고애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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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애만록 中 155
41.썰렁한 절에서 만난 눈썹 하얀 노승/
소옹 묘감(笑翁妙堪)선사
소옹 감(笑翁妙堪)선사가 걸식 행각을 하면서 천남사(泉南寺)에
이르러 잠시 낙양에서 쉬게 되었다.어느 노비와 함께 산길을 걷
다가 우연히 하생원(下生院)이라는 절에 이르렀는데 낡은 집채가
수십 칸이나 되었고,행랑 주변에는 낙엽만이 바람결에 나뒹굴고
있을 뿐 인기척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오직 눈썹이 하얀
노스님 한 분이 계단에 쭈그리고 앉아 따뜻한 햇살을 등에 쪼이
고 있다가 서서히 일어나더니 길손을 멈춰 세우고 법당 앞의 부
서진 의자에 앉도록 권하고서 소옹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 온 곳이 없습니다.”
“ 그렇다면 어떻게 이곳에 있는가?”
“ 이른 아침에 흰죽을 먹었더니 지금은 뱃속이 휑합니다.”
“ 그런 도리가 아니다.빨리 말해라!”
소옹스님이 집 모퉁이에 서 있는 나무를 가리키며 말하였다.
“참 좋습니다.저 나무가 저렇게도 푸르다니.”
두 사람은 서로 마주보며 크게 웃고는 서로 한참 동안 이야기
한 후에야 비로소 그 노스님이 일찍이 무용(無用)스님을 뵈었던
스님임을 알았다.
설봉스님의 빈(玢)시자에게 이 분들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었는
데 안타깝게도 노스님의 이름을 잊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