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84 - 선림고경총서 - 28 - 고애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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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왔으며 송원스님은 호구사를 거쳐 영은사로 옮겨왔다.그 당시 둔
            암(遯庵)스님은 화장사(華藏寺)의 주지를,긍당(肯堂)스님은 정자사

            (淨慈寺)의 주지를 하였으나 모두 송원스님을 따랐다.송원스님이
            영은사에 계실 때 그 문하의 법도가 준엄하여 여덟 달이 지나서
            야 승당에 들어갈 수 있었다.방부 들이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으

            면 언제나 꾸짖어 쫓아 버려 가까이할 수가 없었는데 어느 날 갑
            자기 ‘내가 문을 활짝 열고 방부 들이려는 이들을 다 받아 준다면
            내 스스로 허물을 짓는 일이다’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나는 예전 귀봉사에 3년 동안 있을 때 조원스님이 성
            내고 꾸짖고 희롱하고 비웃고 했던 모든 일들이 모두 위하는 방
            편이었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그 후로 천하의 높은 스

            님들이 오든 안 오든 나를 속이지 못하였고,인연을 따라 자유로
            운 생활을 하였다.조원스님이 입적한 지 20년 후 사람들의 추천

            으로 세상에 나왔으나 그의 영전에 한 묶음의 향을 올리며 그를
            잊지 못하였다.내 여섯 사찰의 주지를 지내는 동안 모여든 대중
            이 없다고 할 수 없지만,자신을 나타내지 않고 겸손히 은거하는

            자가 적으니 괴로운 일이다.우리 종파는 망하였도다.올해 내 나
            이 여든둘이다.이젠 죽을 날이 머지 않은데 병든 몸을 안고 기록

            하여 법통을 얻을 수 있는 실마리를 서술하여 부도 뒷면에 새겨
            지극한 마음을 밝히고자 한다.이 해는 순우(淳祐)10년(1250)경
            술년이다.”

               아!치절스님은 세상에서 말하는,소반 위에 구슬이 구르듯 대
            기대용(大機大用)이 자유자재한 분이었다.그러나 더욱 빛나는 점
            은 스승이 죽은 후 20년 만에야 비로소 주지에 임하니 이는 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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