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09 - 선림고경총서 - 28 - 고애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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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애만록 下 209
“사람으로 하여금 길이 이광(李廣)장군을 생각케 한다.”
“ 칼집에서 나왔을 때와 나오지 않았을 때는 어떻습니까?”
“ 보검은 손에서 떠난 지 오래되었는데 너는 이제서야 뱃전에다
잃은 곳을 새기는구나.”
여름 결제가 끝나는 날 야참(夜參)법문을 하였다.
“90일 동안 꼼짝하지 않으니 그물 속 둥지에 잠든 새요,석
달 동안의 안거는 무덤을 지키는 여우로다.삶과 죽음이 이르지
않는 곳에서 머리 셋에 팔뚝 여섯 개인 귀신이 원각의 가람을
뒤엎은 일을 본다 해도 그것은 말뚝을 안고 헤엄치는 격이다.
운황산 앞,두 그루 나무 아래 90일 동안에 알맞게 바람 불고
알맞게 비 내려,하루 스물네 시간 적어도 더할 수 없고 많아도
뺄 수 없는 일 년 365일을 날마다 안거하고 때때로 자자(自恣)하
여,둥근 건 둥글고 네모난 건 네모나며 긴 것은 길고 짧은 것
은 짧다.그렇다 해도 깨끗한 땅에 먼지를 일으킴을 면치 못하
리니 결국 어찌해야 하겠는가?
붕조가 나래를 펴니 하늘이 아득하고 큰 자리가 몸을 돌리니
바다가 비좁도다.”
대중법문은 대개 이와 같았다.노년엔 항주 냉천사(冷泉寺)에
머무르면서 그의 암자에 ‘청산외인(靑山外人)’이라는 편액을 걸었
으며,경정(景定:1260~1264)연간엔 승상 추학 가공(秋壑賈公)이
더욱 불법을 숭상하여 스님을 정자사(淨慈寺)의 주지에 임명하도
록 주선하였고,그 후 회해(淮海原肇)스님이 법석을 이었다.두 분
모두 간동(澗東)에서 일어난 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