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21 - 선림고경총서 - 28 - 고애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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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애만록 下 221
듣고서는 처음에는 마음이 매우 불편하였다.이성사(二聖寺)를 지
나는 길에 좌원(座元)스님의 책상에서 궁곡(窮谷)스님의 어록을 보
고 운문화타(雲門話墮)공안을 들다가 광명이 적조(寂照)한 가운데
쉼을 얻게 되었다.구봉사(甌峯寺)에 올라가 열흘 동안 대중의 뒤
를 따라 들어가니 스승께서 ‘달마는 웅이산(熊耳山)에 장사를 지냈
는데 무슨 까닭에 한쪽 신발을 매고서 천축으로 돌아갔는가?’라는
화두를 들어 말씀하기에 나는 ‘한 방울의 먹물로 두 마리의 용을
그렸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또 어느 날 소맷자락을 털고 떠나니
본래면목이 활짝 열려 드디어 4년을 발길을 끊은 뒤에야 양자강
의 남북과 절강성의 동서를 다니면서 벗과 스승을 가까이하였고,
단맛 쓴맛을 다 보아 모든 행동이 법에 어긋나는 일이 없게 되었
다.이제 또 30년이 되었으나 아직 비슷하게도 못 되었으니 이 일
은 정말 쉽지 않음을 알겠다.‘쉰다’는 한마디가 진짜 나의 유일한
선지식이다.”
이는 수상인(秀上人)에게 설법한 글에 실려 있다.요즘 학인들
은 흔히 이 어록을 보면서 그 뜻을 생각하지 않으니 서글픈 일이
다.
불지(佛智)노스님께서 그의 어록에 발문을 썼다.
“석계스님이 운정사(雲頂寺)를 떠나지 않았을 때는 가보지 않
은 곳이 있으면 으레 찾아갔으며,운거(雲居)스님을 뵙고서는 물
어보지 못한 말이 있으면 반드시 물어보았다.반년 동안 운거스
님을 시봉할 때는 마치 활시위의 화살이 과녁을 알면서도 시위
를 떠나지 못한 것과 같았으며,마침내 ‘소맷자락을 털고 일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