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22 - 선림고경총서 - 28 - 고애만록
P. 222

222


               섰을 때’에 가서는 마치 과녁에 적중한 화살이 이미 활시위를
               떠났는데도 그 스스로 모르고 있는 것과 같았다.그러나 그가
               초년에 북산 아래에서 송원(松源)스님을 만났을 때 이 어록은
               이미 세상에 유행하였다.만일 그가 입을 벌린 후에야 이 어록

               이 나왔다고 생각하는 이가 있다면 뒤통수에 석계스님의 따끔한
               침을 맞아야 할 것이다.”


               아!불해스님이 불법 깨달은 경지를 이 글에서 볼 수 있다.비
            록 몇 마디 되지 않지만 깨달음으로 이끌어 주는 말이니만큼 이

            를 기록하지 않을 수 없다.




               43.두타행을 하다 간 거사 왕공대(王孔大)



               왕공대(王孔大)는 복주 경강(徑江)사람이며 태학박사(太學博士)
            종합(宗合)의 조카이다.나이 20세에 종손이라는 이유로 춘관(春官)

            에 추천되었으나 받아들이지 않았다.신해(辛亥:1131)년에 의연
            하게 고탑주(古塔主)의 가풍을 본받아 선비의 관을 찢어 버리고

            삭발한 후 포주(莆州)벽지암주(辟支巖主)입견(立堅)에게 귀의하여
            두타행을 하였다.얼마 후 그의 행적을 아는 사람이 생기자 더욱
            가파른 산꼭대기에 올라가 토굴을 짓고 그곳에 살았으며 그의 부

            모가 애써 만류하였지만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2년이 지났는데
            천주 남명사(南明寺)교충(敎忠:~1155)스님의 법도가 훌륭하다

            는 말을 듣고 그의 토굴을 불사르고 교충스님을 찾아뵌 후 게송
            을 바쳤다.
   217   218   219   220   221   222   223   224   225   226   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