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5 - 선림고경총서 - 28 - 고애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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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애만록 上 35
7.불탄절 법문/만암 치유(萬庵致柔)선사
만암 유(萬庵致柔)선사가 대중에게 설법하였다.
“유구(有句)무구(無句)는 마치 등덩굴이 나무에 기대 있는 것
과 같다 했으니,이는 가시나무 숲 속에서 살길을 틔워 주는 말이
다.그러나 나무가 자빠지고 등덩굴이 메마르면 유구․무구는 어
디로 돌아갈까.무쇠 저울추에 좀벌레가 구멍을 뚫으니 진흙 쟁반
을 버리고 껄껄 웃는다.사람을 죽이는 칼인지 살리는 칼인지는,
황금털 사자새끼라면 삼천리 밖에서도 가짜를 가려낼 것이다.”
불탄절(佛誕節)을 맞이하여 설법하였다.
“부처님이 태어나자마자 일곱 걸음을 걸었다는 것은 이미 사악
한 길로 들어선 일이며,사방을 돌아보았다 함은 눈뜬 자리에서
오줌을 싼 것이다.하늘과 땅을 가리켰다 하지만 무슨 근거가 있
으며,유아독존(唯我獨尊)이라 하지만 한갓 어린애가 아닌가.도대
체 목욕은 시켜서 무얼 하겠다는 건가?”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을 이었다.
“산호 베갯머리에 흐르는 저 눈물의 절반은 그대 생각,절반은
그대 원망.”
가을 서리를 밟으며 얼음을 알고,봄 이슬을 밟으며 무더위가
다가옴을 알 듯,위의 몇 마디로 스님을 알 수 있겠다.밀암(만암
의 은사스님)스님의 가풍은 엄하였으나 많은 학인을 맞아 지도하
기도 하였다.배를 통째로 삼킬 수 있는 큰 물고기도 그물을 빠져
나갈 수 없듯이 만암 치유스님으로서도 밀암스님의 법망(法網)을
어떻게 벗어날 수 있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