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3 - 선림고경총서 - 28 - 고애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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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애만록 上 43


               “주각(注脚:注釋)을 잘못 달 뻔했구나.”
               할을 한 번 하고서는 법상에서 내려왔다.

               선석(禪席)을 물러난 뒤에는 무강(武康)연산(宴山)의 접대사(接
            待寺)에서 지냈다.영종(寧宗)이 더욱 불법을 숭상하여 가정(嘉
            定:1208~1224)연간에 스님은 두 차례의 어명을 받아 남산사(南

            山寺)를 관리하였고 칙명을 받아 연화전(延和殿)에서 성상을 알현
            하였다.영종이 불행선사(佛行禪師)라는 법호와 금란가사를 하사하
            였으니 은총이 지극하였다.





               12.긍당 언충(肯堂彦充)선사의 염송


               임안부(臨安府)정자사(淨慈寺)긍당 충(肯堂彦充)선사는 여항

            (餘杭)사람이다.만암 안(萬庵道顔)의 법제자로서 도풍이 엄정하
            여 당시 사람의 존경을 받았다.

               즉심즉불(卽心卽佛)에 대하여 송하였다.


                 황금대궐을 살며시 떠나오는 서시(西施)의 아름다움이요
                 옥루(玉樓)에서 사뿐사뿐 내려오는 양귀비의 교태로다

                 하루종일 그대와 꽃그늘에 취하노니
                 어딘들 풍류스럽지 않다고 싫어하리.
                 美如西子離金闕 嬌似楊妃下玉樓
                 終日與君花下醉 更嫌何處不風流



               조산(曹山)끽주(喫酒)화두를 송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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