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2 - 선림고경총서 - 29 - 산암잡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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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身只是一張口 百煉鍊中袞出來
斷送夕陽歸去後 又催明月上樓臺
이에 무준스님은 그에게 시자의 소임을 맡겼다.소임이 만기가
되자 무준스님은 그 직책을 대신할 사람을 청해 왔는데 설암스님
은,이 사람에게 넘겨주지 않으려 했다.스님은 무준스님이 보낸
사람이 문으로 들어서는 것을 멀리서 보고,창문에 엎드려 심한
구토 소리를 냈다.무준스님은 그의 마음을 알고 일부러 손가락질
을 하면서,“저 아이는 복이 없는 놈이다.시자직을 그만두자 피
토하는 병까지 걸렸구나!”하고 크게 성을 냈으나 설암스님은 조
금도 개의치 않았다.
그는 주지로 세상에 나왔을 때,여러 차례 법을 잇는 향불을
올렸지만 어느 분을 위한 것이라고는 밝히지 않고 이런 말을 했
다.
“낡은 좌복 위에서 땅이 찢어지고 하늘이 무너졌으니,남에게
서 얻은 것이 아니라…….”
그리고는 다시 향을 품속에 넣고 법좌에 앉았다.그가 앙산사
의 주지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무준스님을 위하여 향을 올렸다.이
때문에 지금까지도 무준스님이 스승이니 아니니 하는 말이 있다.
나의 생각으로는 설암스님은 당시 젊은 나이에 패기에 휘둘린 것
이며 무준스님은 당대 큰스님으로서 너그럽게 참지 못하여 부자
간의 정리가 이처럼 어긋나게 된 것이리라 여겨진다.큰 사찰을
맡아 불자를 잡는 주지들은 이 일을 거울 삼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