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4 - 선림고경총서 - 29 - 산암잡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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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을 하면 아무리 비바람이 부는 날에도 어기지 않았다.
중년이 되어 배움이 끊긴 종지를 탐구하기 위하여 처음으로 중
모(仲謀)스님을 찾아갔으나 깨닫지 못하고 마침내 본각사(本覺寺)
남당(南堂)스님을 찾아가 법을 물으니 남당스님이 말하였다.
“너는 원래 대사(大事)를 깨친 사람이지만 듣고 본 것이 너무
많아 가슴이 막혀 본지풍광이 나타나지 못하는 것이다.”
“ 무엇이 부처입니까?”
“ 새벽에는 죽 먹고 점심때는 밥 먹는다.”
“ 스님께서는 큰 풀무를 열어 놓으시고 성인이나 범인이나 모두
녹여 단련하십니다.저 같은 사람이야 쓸모 없는 한 덩이 구리나
무쇠 같다지만 이 속에 들어왔으니 단련하여 아름다운 그릇으로
만들어 주기를 바랍니다.만일 할 수 없다면 이는 스님 풀무에 열
기가 부족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남당스님은 그의 정성스럽고 간곡한 마음에 감동되어 자세히
가르쳐 주었다.
“나의 이 법문(法門)은 그대로 깨닫는 것을 귀중히 여기지 세속
적인 지혜와 총명에 있는 것이 아니다.매서운 의지를 내서 일도
양단한다면 무슨 구리를 단련하고 무슨 그릇을 만들고 할 것이
있겠는가?이 두 가지 길을 버리고 ‘부모가 낳아 주기 전[父母未
生以前]’의 소식에 대하여 한마디 해보아라!”
이에 종성스님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그 후 옛사람을 본받아
미륵불상을 머리에 이고 아침저녁으로 도를 행하며 불호(佛號)를
외우고 도솔천 내원궁에 왕생하게 하여 달라 기원하고 시를 지어
그의 뜻을 피력하였다.62세에 병이 들자 주변에 명하여 평소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