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6 - 선림고경총서 - 29 - 산암잡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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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레 초하루와 보름에 설법을 마친 후 모두들 스님의 처소에 와
            서 절을 올릴 때마다 반드시 그들에게 주지의 상당법문이 어떻더

            냐고 말하도록 한 후 정담 어린 말씨로 그들에게 말하였다.
               “오늘 장로의 상당법문은 좋은 말씀이다.그의 법문은 주지직
            을 맡아보는 데 규모가 있고 문도를 거느림에 법도가 있는 말씀

            이다.”
               기(岐)상좌는 명암 희(明巖熙)스님이 손수 도첩을 내려 준 제자
            이다.어느 날 욱(郁)산주의 과려도(跨驢圖:당나귀 타고 가는 모습

            을 그린 그림)를 들고 무제스님을 찾아와 제(題)를 청하자 스님은
            서슴없이 붓을 잡고 게를 지었다.



                 절름발이 당나귀 시내 다리 지나다가 발을 헛디뎠을 때
                 완두콩을 진주로 잘못 알았지
                 아이들은 집안 추태 감출 줄 몰라서
                 도리어 양기 노스님을 웃겨 버렸네

                 策蹇溪橋蹉脚時 誤將蜿豆作眞珠
                 兒曹不解藏家醜 笑倒楊岐老古錐


               이어 기상좌에게 물었다.
               “말해 보아라.당시 양기스님의 한바탕 웃음이 어느 곳에 떨어

            졌는가를?”
               기상좌가 말하였다.



                 바람도 없는데 연꽃 잎새 흔들거림은
                 필시 물고기의 움직임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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