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2 - 선림고경총서 - 29 - 산암잡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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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인과를 경시한 업보/경산사 혜주(惠洲)스님



               경산사의 제점(提點)을 맡은 혜주(惠洲)스님은 호암(虎岩)스님의
            문도로서 매우 총명하여 일처리를 잘하는 재간을 지녔다.그는 절
            일을 맡아본 30여 년 동안 금전과 양곡을 멋대로 썼다.누군가 인

            과응보로 충고하면 그는 “가득히 실려 오는 뿔 달린 축생 가운데
            나는 뿔 한 쌍만 달면 되지!”라고 빈정거렸다.

               지정(至正:1341~1367)초에 고납린(高納麟)이 선정원(宣政院)
            의 사무를 맡게 되자 그의 아랫사람인 정가(淨珂)스님은 그의 비
            행을 낱낱이 기록하여 고발하였다.이에 그의 죄상이 드러나자 곤

            장을 쳐서 환속시켰다.그 후 화성원(化城院)에 숨어살다가 풍증을
            앓아 주먹은 마치 고슴도치처럼 부들부들 떨면서 오므라들고,두
            손을 꼭 쥔 채 양 볼을 감싸안고 두 다리는 엉덩이 뒤에 바싹 붙

            였다.그의 병을 간호하는 자가 펼치려 하면 아픔을 참지 못하였
            으며 밤낮으로 신음소리만 들려 올 뿐이었다.이처럼 3년을 지내
            다가 드디어 죽었던 것이다.

               혜주는 평소 가벼운 마음으로 사무를 처리하고 인과를 경시하
            여 결국 “수많이 실려 오는 뿔 달린 축생 가운데 나는 뿔 한 쌍만

            달면 되지”하던 말같이 되었다.
               내 생각으로는 삼도(三途)의 업보 가운데 오랜 세월이 흐르다
            보면 한 마리 짐승으로 태어나 짐승으로 가는 동안 무량겁에 이

            르도록 줄곧 뿔을 달고 태어날 것이다.어찌 한 생에 그치겠는가.
            모든 사찰의 재물을 관리하는 자들은 혜주의 전례를 거울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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