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3 - 선림고경총서 - 29 - 산암잡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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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암잡록 下 143
21.청렴하고 유능한 제점승*/지문사 이 정당(彝正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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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무(洪武)8년(1375)가을 나는 도반 보복 원(報復元)스님을 찾
아 상산(象山)지문사(智門寺)를 갔는데 그곳에 이 정당(彝正堂)이
라는 제점(提點)승려가 있었다.그는 40여 년 동안 절 재물의 출
납을 맡아보았는데 청렴하고 유능하여 계획과 결단에 규모가 있
었으며 대중을 잘 무마하여 여섯 명의 주지를 겪으면서도 시종여
일하게 일을 처리하였다.그 해 7월 24일 밤 꿈에,두 동자가 책
상 앞에 나란히 서 있기에 무슨 일로 여기에 왔느냐고 묻자 동자
는 제점에게 금전출납부를 계산해 보려고 왔다는 것이다.이에 나
에게는 계산할 수 있는 장부가 없다고 말하다가 깨었는데 다시
잠이 들어 같은 꿈을 꾸게 되었다.그 이튿날 방장실을 찾아가 어
젯밤 꿈 이야기를 한 후 방장스님에게 말씀 올렸다.
“간밤에 이와 같은 꿈을 꾼 것은 올해 고사(庫司)를 맡아보는
자가 게을러서 상주재산의 장부를 만들어 놓지 않았기 때문일 것
이니,스님께서는 그를 독촉하심이 좋겠습니다.”
그가 말하는 태도를 보니 조금도 부끄러워하는 빛이 없었다.
얼마 후 들어보니 이 정당이 그의 방으로 돌아가는 길에 미끄
러져 술 취한 사람처럼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밤중이 되어서야 다
시 깨어나 황급하게 뒷일을 정리한 후 눈을 감았다고 한다.이 정
당은 지문사에 공로가 있는 사람이라 하겠으니,임종 때까지도 자
기 일에 충실하였다.그러나 요즈음 절 일을 맡아보는 많은 사람
들은 상주물을 보면 마치 소리개가 먹이 낚아채듯,제비가 벌레
*제점(提點):상주물 관리 소임.